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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동하는 심장의 설계자 

“ 나를 믿게, 자네의 믿음에 보답할테니. ”

나시타_전신.png

(@kirr_rr님 커미션)

Hair

 채도 낮은 은빛의 머리카락, 무슨 연유에서인지 짧게 잘라낸 것은 아주 깔끔하다기보다는 다소 흐트러진 모양새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바람이 헤집고 갈 때마다 가볍게 나부끼는 얇은 실타래. 가끔 그 위로 빛이 비쳐들면 그 은빛에 뒤엉켜 산란하는 반짝임이 마치 조명 아래로 가볍게 무대를 딛는 찬란한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기계장치의 금속성을 옮겨놓은 것만 같은 색채, 이전보다 선명하다 여겨지는 것은 그저 인상의 차이인가, 혹은 실제로 변화한 것인가?

Face

 단호한 인상을 주는 짙은 눈썹, 그 아래로 단정한 눈매가 보는 이의 시선을 끌었다. 더 이상 가리는 안대가 없기에, 투명한 렌즈 너머로 드러난 빛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담긴 것은 곧 그의 에피스타였다. 그의 오른쪽 시야는 연극을 보는 눈, 신성을 구현하는 매개나 다름없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다른 한쪽의 눈동자는 제르시아의 호수를 담은 듯 맑은 물빛,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상대를 응시할 적에 그 안에 담긴 것은 더 이상 기계의 서늘함이 아니다. 이전과 달리 자주 유쾌하게 호선을 그리는 얇은 입술, 은빛으로 반짝이는 귀걸이가 귓가에서 가만히 흔들렸다.

Body

 다소 어두운 색채의 피부. 앳된 외관은 크게 변함이 없어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20대 정도에 머무른 듯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공기에는 쉽게 짐작되지 않는 시간의 무게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커다란 부상은 없었으나 옷깃 아래로 얼핏 드러나보이는 흉터의 흔적이 지난 50년을 의미한다. 절뚝거리는 걸음과 부상당한 왼쪽 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세운 등에는 망설임 하나 없는 것이 50년 전의 그와 조금도 달라진 바 없는 것 같아 보이지 않던가. 늘상 검은 케인을 짚고 걸었으나 걸음에는 힘이 실려, 그에 개의치 않겠다는 어떠한 선언이다. 위태로운 모순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견고한 불굴, 부드러워진만큼 오히려 더 단단해보였다.

Cloth

 여전히,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단정하게 입은 순례복. 섬세한 손가락을 감싼 새하얀 장갑은 조금의 변함도 없다. 더 이상 얼굴을 가리는 것 없으니 줄곧 수없이 가면을 바꾸어 덧씌우듯 모호하기만 했던 그의 인상은 이제야 조명 아래로 나온 배우처럼 명확하게 드러난다. 은빛으로 빛나는 기계장치, 잘 벼려진 칼날을 따라 흐르는 빛, 어떠한 것도 틀리지 않을 설명이다. 

Theme Music: Asgore

나는 여러 이름을 가진 존재, 수없이 많은 역을 맡는 한 명의 배우.

어떤 것은 명멸하고 어떤 것은 불멸하지.

허나 어떠한 것을 불러도 그것은 결국 나를 칭하는 이름이지 않겠나.

자, 너무 걱정 말게. 다시 한번 소개할테니.

나의 이름은,

에피니키온

Nasitar

나시타

하이젤.png

172cm|56kg

신성

Divinity

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등장인물과 무대장치를 소환하여 자신의 각본에 따라 설계한다

“자, 이제 막을 올리게. 각본은 준비되었으니.”

  신성을 담은 그의 시야는 현실에 연극을 구현한다. 이 연극 속에 그는 임의의 등장인물과 무대장치를 세워 극의 전개를 설계할 수 있다. 기존의 신성이 오토마타를 소환하는 것에 그쳤다면, 지난 50년 사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난 각본가는 이제 무대 자체를 일부 현실에 끌어와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톱니바퀴와 나사, 맞물려 돌아가는 태엽으로 이루어진 오토마타, 선명한 금속음을 내며 세워지는 무대 장치들은 실제로 존재하여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성을 통해 구현되어 형체를 이루는 것에 불과하였으므로 오래 유지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면 퇴장하듯 사라진다. 이처럼 그가 쓰는 각본이 공간에 새겨져 개연성을 얻는 것과 동시에 등장인물과 소품이, 조명과 연출을 위한 장치가 그의 지휘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

  오토마타는 무대 위에 올라섬과 동시에 현실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갖추게 되는데, 이 서사가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며 또한 말이 되는지가 바로 나시타가 설계하는 각본의 개연성이 된다. 나시타는 오른쪽 눈으로 제가 쓴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연극을 보고 왼쪽 눈으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장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피며 적을 피격한다. 각본이 정교하게 현실과 부합할수록 등장인물이 내는 위력과 무대장치의 내구도가 강해진다. 반면, 제대로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아 억지로 진행되는 무대에서는 등장인물이 힘을 잃거나 무대장치가 붕괴하는 등의 페널티를 부여받으며, 이렇게 흐트러진 개연성으로 인하여 나시타의 시야 자체가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개연성의 부담은 오로지 각본가의 몫이었으므로, 나시타의 신성은 각본을 구상하고 현실에 부합하도록 설계하는 나시타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면이 있었다. 

아샤

Asha

Noitcifatem

노이시파템

“깊게 몰입하고 또한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

 

  검은 안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호화로운 장식 하나 없이 단정한 모노클의 렌즈. 사실상 노이시파템이 간략화되어 주요 구조를 이루던 렌즈만으로 충분하게 된 것은 그 주인인 나시타의 신성이 지난 시간을 거쳐 상당히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연극 사이의 혼동이 줄어들었으므로 굳이 시야를 가릴 필요는 더 이상 없다. 섬세하게 설계된 노이시파템의 렌즈는 일종의 고글이자 보호구의 역할로, 나시타의 신성을 보조하여 그가 보는 연극의 상을 보다 선명하게 하고 그의 각본이 현실에 가지는 개연성을 극대화하여 등장인물과 무대장치를 강화한다. 쉽게 말해 그가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돕고, 그 몰입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을 돕는 보조 도구에 가까울 것이다. 노이시파템이 있기에 나시타는 각각 현실과 연극을 보는 두 개의 시야를 보다 확실하게 분리하고, 그에 기반하여 연극을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었다.

성격

Personality

Theatrum Mundi.

세상은 극장이다.

 나를 믿는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지. 

 

여유로운 / 책임감 있는 / 신뢰하는

  나시타의 오랜 강박이 그 어둡고 무거운 자취를 감춘다. 언제나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 짓는 표정과 내뱉는 말마저 계산에 의해 행하던 이는 더 이상 없었다. 깨어진 가면, 무너진 요새 너머로 얼핏 스쳐가던 희미한 그림자, 쉽게 제어되고 휩쓸리던 자아가 뒤늦게 생명을 찾는다.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줄로만 알았던 심장은 결국 맥동하는 생명을 담은 것. 그러니 그는 호수 밑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던 자신을 들여다본 끝에 수면으로 그 몸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조급함이 사라진 자리를 여유로움이 채운다. 최고의 배우는, 의심할 여지 없는 타고난 연기자는 그만큼 자신감을 갖는다. 불완전함을 부정할 이유가 없으니 완벽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가 남는다. 천성적인 책임감, 제 의무를 향한 무한한 긍정. 그러니 그는 신뢰한다. 자신을 믿는 이들을 믿고 그들이 믿는 자신을 믿는다. 애정과 믿음에 부응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저 더 이상 굴레가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는 오직 자신만이 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제가 이미 정한 것이었기에 다른 누구도 그것을 흔들 수 없었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기대를 지키고, 

 

신중한 / 섬세한 / 단호한

  나시타는 여전히 신중하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경계하나 그 이유가 다르다.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리 하는 것이 당연해서라기보다는 제가 그리 하고 싶기 때문, 자신이 아끼는 이들에게 나시타는 자연히 관심을 기울인다.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이룩한 무대, 그 위에 선 모든 이들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그지없는 배우의 역할이므로. 그는 한번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인적 사항은 물론 세세한 것들마저 기회가 닿는 대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특히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제게 우호적인 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의심 깊고 신중한 태도가 그를 멈춰세우거나 우유부단하게 했는가 하면 그 또한 아니었다. 그는 결연했고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단호했다. 지나간 일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으며 이미 내린 선택에 미련을 두지도 않았다. 평형을 지키면서도 가끔은 급진적이었으며, 침착하게 굴다가도 결단이 필요할 때는 대범해졌다. 단호한 의지,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었을 터였다. 완벽이 자신의 목을 조이지 않으니 오히려 행동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던 망설임은 없다.

 내가 아는 최고의 결말을 설계할 뿐이네. 

 

이상주의적인  / 열정적인 / 견고한

  나시타를 정의하던 그 차갑게 얼어붙은 성정은 오간데 없다. 자신의 이름을 움켜쥐고 세계에 선 각본가는 비로소 최선의 결말을 소망하게 되었으므로. 연극이란 결국 개연성의 연속이고 개연성이란 그러한 결과를 불러일으킬만한 조금의 이유이자 아주 미약한 힘. 어떤 전개를 향해 이야기를 슬쩍 틀어놓는 손길. 그것이 가능함을 깨달은 이상 극장의 주인은 희망할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연극이, 부디 최선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기를. 끝없는 굴레에 묶여 반복되는 덧없는 생애라고 할지언정 그 모든 반복되는 연극의 종장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욕심은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열정으로 이어진다. 이 세계가 끝나지 않는 하나의 무대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 무대 위에 서서 잊혀지지 않을 최고의 연극을 선보이겠다고. 그러한 각본가의 갈구는, 역으로 그 자신을 견고하게 한다. 오직 자신이 연기하는 각본이 최고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행동의 동력이 되어, 위태로운 무표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유쾌한 웃음이 어린다. 그 모습은 오히려 냉철하고 무심하던 이전의 모습보다 천진한 어린애 같아 보였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덜 위태롭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기타

Etc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존경받는 총리, 꺾이지 않을 영웅, 빛나는 인도자.

그러나 그 모든 수식 앞에 선행하는 자신의 이름을 잊은 적 없다.

< Residence: 제르시아 Xercia >

   13년 전 나시타는 다시 한 번,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을 구속하는 하나의 굴레라고, 자신은 그저 총리의 자리를 연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이상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제르시아에 애정을 갖는다. 그것은 연기 따위도, 의무감 따위도 아닌, 자신의 영혼이 속삭이는 단단한 애정이다. 자신을 믿는 이들을 믿는 탓에 자신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여전히 의회에는 그의 신도인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있었으나 총리로써의 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최선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는 더 이상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는다. 홀로 고고했던 철혈의 총리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으나 오히려 이러한 모습을 긍정하는 이들도 많았으리라. 맡은 일에 충실하게 임하고,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며,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주 제르시아를 돌아보고, 신과 인간 모두를 공평하게 아꼈다. 제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신은 믿음에 보답한다. 보다 견고하게, 흔들림 없이.

< 신앙에 대하여 >

과거를 돌아보되 후회하지 말라. 미래를 내다보되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생애는 오로지 그대의 것, 그러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

  에피니키온의 신도들, 즉 나시타를 따르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성실했으며, 정치적인 분야에도 많이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최고의 연극을 향한 갈망에 기반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사려깊은 시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로운 눈동자, 그 모든 것을 지키되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지어다. 연극은 오직 현재에 자리한다. 그러니 에피니키온의 신도들은 열정적으로 현재에 임한다. 충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위하여 노력한다. 나시타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 나시타가 과거부터 재앙에 맞서 싸워온 영웅이자, 여러 생을 거쳐 제르시아의 총리직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는데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은 나시타의 능력을 믿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좋은 인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나시타는 역으로 자신을 믿는 그들을 믿는다. 단단히 이어진 신뢰 사이, 그들은 하나의 결말을 향하는 동반자에 가깝다. 열정적으로 모든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에피니키온의 신앙이다.

  제르시아의 동쪽, 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위치한 나시타의 신전이 그 믿음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은빛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신전, 단호하고 결연한 그 생김새는 신전이라기보다는 요새를 닮아있었다. 실제로도 나시타의 신전은 단순히 기도를 올리는 곳에 국한되지 않았다. 승리와 성취, 명예를 높이 사는 나시타의 신도들은 신전 안에서 강연을 열거나 토론을 벌이기도 했으며, 가끔 거대한 홀을 극장 삼아 연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종 나시타가 연극의 각본을 쓰는 일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시타가 그것을 상당히 기껍게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전은 총리 관저와 함께 나시타가 대부분의 시간 상주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나시타의 신도라면 누구든지 나시타에게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신이 직접 신도를 만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에피니키온의 관습이었으며, 이번 생의 나시타 역시 그러한 관례를 승인했다. 나시타의 신전에서 신과 인간의 괴리는 크지 않다.

< 연혁 >

연도

​기록

LL 5993

 총리로써 생을 마치신 이래, 제르시아의 호수 한가운데로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내시니 이번의 모습이 이전의 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이라. 물과 같은 눈동자에 빛과 같은 시선을 담으시니 그분이 함께하시는 한 오로지 광휘의 수호를 받음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LL 6018

 지나간 생애에 그리 하신 것과도 같이 이번에도 역시 제르시아를 이끌기 위하여 총리직에 임하시니 이는 과거의 영광이 다시 오늘날에 이어짐이라. 모든 제르시아의 생명이 그분께서 이전날 그리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를 지키고 이끄실 것을 믿어 환희의 노래를 불렀나이다.

LL 6021

 하늘이 핏물처럼 붉게 물드니 이 또한 재앙의 전조가 아니면 무엇이리오. 마땅한 의무를 등에 지고 셀라 아래 출전하시니, 경배하라. 우리의 신, 영광된 승리의 인도자 에피니키온이시여.

LL 6032

 원죄의 재앙이 세계를 뒤흔들 적에 어찌 그 위협에서 물러나실까. 이전의 모든 생애에서 그리하셨던 것과도 같이 전장의 선두에 임하시니 그분을 따름에 누구 하나 두려움이 없어라. 승전의 노래가 우리와 함께함이라 모든 싸움의 승리가 이미 우리의 것이로다.

LL 6037

 오랜 의무를 내려놓고 제르시아를 떠나시니, 자취를 감추심에 따라 어둠이 내리더라. 그러나 믿는 이들이 굳건하고 남기신 발자취 찬란하여 신앙은 여전하였나이다. 극장의 주인이 자리를 비운다 한들 무대가 여전한데 어찌 달라짐이 있었으리오. 충실한 이들이 오로지 그분의 귀환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섰으니, 오랜 헌신에 축복 있으라.

LL 6052

 바브리치에서 다시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심이라. 고귀한 생을 끊으려 하는 삿된 자를 스스로 벌하셨나이다. 그 용맹함 이전과 같고 냉철한 판단이 조금도 흐려지지 아니하였으니 돌아오신 그분을 누가 감히 의심하리오. 혼란의 종지부를 선언하시고 다시 한 번 믿음을 약속하시니 신도들이 입을 모아 답하되 그 누구도 감히 불신한 적 없다 하더라. 

LL 6058

 숙적 메르셀이 끝내 비겁한 도주를 택하니 오랜 불명예 그의 이름에 오욕이 되었나이다. 하여 영예의 관이 그분의 머리 위에 내리니 그 빛에 흐려짐이 없고 시선에 망설임이 없으니 진정으로 기다리던 에피니키온, 그분이 돌아오심이라. 모두의 믿음에 기꺼이 답하고 다시 한 번 제르시아의 총리에 임하시더라. 보라, 누가 감히 그분의 이름을 의심하겠는가?

LL 6071

 다시 한 번 대재앙의 전조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니, 합당한 결의가 그분의 걸음 셀라로 인도하심이라. 이제 우리를 위하여 출전하시니, 경배하라. 믿음을 잃지 않을지어다, 우리의 위대한 에피니키온이여, 영원할 우리의 신이여, 우리가 당신을 흔들림없이 믿는 것과도 같이 당신께서 스스로를 굳건히 믿으시니,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를 지켜주소서.

< 그 자신의 특징들 >

  • 연극이 남기는 여운인지, 신성을 사용한 직후에는 가끔 뜻없이 제 눈가를 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오랜 버릇 탓인지 유독 잠이 적었고 자주 주변을 산책하듯 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띄고는 했는데, 케인이 규칙적으로 바닥을 딛는 것을 보아 다리의 불편함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다가서면 찰랑이는 물 같은 서늘한 향기가 났다. 총리 관저가 호수 한 가운데에, 신전이 커다란 강줄기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그 흘러넘치는 물들의 향기가 기어이 그곳에 자리잡은 신인 나시타 자신에게마저 옮겨붙은 것일지도 몰랐다. 

 

  • 보다 감정을 풍부하게 싣는 말투, 가끔은 무대 위의 배우가 읊는 것마냥 연극조로 들리는 말투들이었다. 연극의 신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 동작 하나하나가 제법 아름답고 매끄럽게 이어져 조명을 받고 선 것처럼 타인의 주의를 끌 때가 있었더랬다.

관계

Relation

From Past to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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