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심장의 인도자
“ 나를 믿는다면, 자네의 믿음에 보답하겠네. ”
두상 | (@evernever_090님 커미션)
전신 | (@kirr_rr님 커미션)
Hair
채도 낮은 탁한 회색의 실타래가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어쩌면 기계 장치의 금속 같은, 혹은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색채를 띈 것은 빛을 받으면 선명한 은빛으로 반짝거리기도 했다. 긴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빗어내린 모양새는 그가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제법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보이는 듯 했다. 별다른 머리장식 하나 없이 그대로 풀어내린 얇은 머리칼은 가끔 바람에 소리없이 나부끼며 은빛의 장막을 드리웠다.
Face
단호한 인상을 주는 짙은 눈썹, 그 아래로 매서운 눈매가 보는 이의 시선을 끌었다. 대부분의 경우 검은 안대, 그의 아샤가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홀로 드러난 왼쪽 눈동자는 제르시아의 호수를 그대로 담아온 것처럼 시리도록 맑은 물빛이었다. 가끔 신성을 전개하기 위해 가렸던 것이 치워지면, 오른쪽 눈에는 마치 다른 세계를 보는 것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시선이 선명히 담겼다. 고집스러운 턱선, 무언가 생각하듯 내려다보는 눈동자 같은 것들이 전부 그의 성정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귀걸이가 귓가에서 가만히 흔들렸다.
Body
다소 어두운 색채의 피부. 다소 앳되어보이는 외관에, 겉으로 보기에 눈에 띄는 흉터 하나 없는 것이 제법 곱게 자랐나 싶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쉽게 낮추어 볼 수 없는 것은 다만 그가 두르고 있는 매서운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째서인지 왼쪽 다리만큼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내보이지 않았는데, 무슨 부상이라도 당했는지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조금 절뚝거리는 걸음이 주의를 끌었다. 늘 케인을 짚고 걸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세운 등이 그 자존심을 반증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외관과 그 자신이 두르고 선 분위기의 괴리가 온통 모순 같았다.
Cloth
단정하게 차려입은 순례복에는 구김 하나, 먼지 한 톨 남지 않은 것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제법 알 만 했다. 새하얀 장갑이 섬세한 두 손을 감싸고, 검은 안대가 오른쪽 눈을 가리면 어쩐지 쉽게 그의 인상을 단정지을 수 없었다. 부드러운 옷감에 감싸여서도 날선 사람, 은빛의 기계장치 같기도 하고 선득하니 벼려진 칼날 같기도 한 사람이었다.
Theme: Ancient Atonement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란 제법 다양해.
총리님이라고도 하고, 인도자라고도 하고, 영웅이라고도 하지만
따지자면 지금의 나에겐 전부 부질없는 호칭이지 않겠나.
자네가 알아야 할 이름은 그런 것들보다는 간단하다네.
나의 이름은,
에피니키온
Nasitar
나시타
167cm|54kg
신성
Divinity
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장치의 신
▷ 등장인물, 즉 오토마타를 소환하여 자신의 각본에 따라 조종한다
“이 연극, 여기서부터는 내가 다시 쓰지.”
신성을 담은 그의 시야는 현실에 연극을 구현했다. 이 연극 속에 그는 임의의 등장인물 을 세울 수 있는데, 이 등장인물이란 그의 의사, 즉 각본에 따라 행동하는 인형 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는 신성을 활용하여 형체를 갖춘 것에 불과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이 등장인물들은 정교한 태엽과 톱니바퀴 따위의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오토마톤automaton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전적으로 그가 상상하는 각본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존재들이므로 그 모양이나 크기, 특징 등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고 때마다 변화하고는 했으나, 어느 것이든 나름대로의 각본을 부여받아 수행하는 것 뿐 인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나시타가 즐겨 부르는 등장인물들은 재앙에게 피해를 입히기 좋을 법한 이들, 즉 기사나 사수를 모방한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오토마타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유연한 변화를 보인다.
오토마타는 무대 위에 올라섬과 동시에 현실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갖추게 되는데, 이 서사가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며 또한 말이 되는지가 바로 나시타가 설계하는 각본의 개연성이 된다. 나시타는 오른쪽 눈으로 이 오토마타가 만들어내는 무대 위의 연극을 보고 왼쪽 눈으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장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피며 적을 피격한다. 각본이 정교하게 현실과 부합할수록 등장인물이 내는 위력도 강해지는 반면, 제대로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은 무대에서는 등장인물이 힘을 잃는다. 따라서 각본을 구상하는 나시타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면이 있었다. 몇 기의 오토마타가 일제히 나시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깊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연극 같기도 했다.
▶ 나시타 본인의 설명
아무리 하찮은 극이라도 개연성 은 중요하다네. 모든 각본에는 서사가 있는 법이고, 아무리 거대한 장치라도 그 자체를 뒤틀어버릴 수는 없으니. 이해가 어려운가? 예를 들어, 현실에는 나 자신과 내가 불러낸 오토마타 하나, 그리고 비행형 재앙 하나가 있다고 할까. 나는 이 현실에 각본을 덧씌워 가상의 무대를 설계하네. 그리하면 이 등장인물은 무대 위에서 선택받은 기사가 되어, 비행형 재앙 - 그의 입장에서는 하늘을 나는 용 - 을 퇴치하기 위한 장대한 연극의 연기를 시작하는 것일세. 하여, 내 한쪽 시야에서는 기사가 성검을 들고 마룡과 싸우는 사이 다른 시야에서는 오토마타가 비행형 재앙을 공격하고 있는 셈이지. 두 극이 정교하게 맞물리지 않으면 등장인물이 개연성을 잃어 무대 자체가 와해되는 일이 생겨. 내가 해야하는 일은 두 가지 시야를 적절히 조합하고 치환함으로써 완벽한 각본을 작성하는 것이네. 연극 속의 기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묘사를 덧붙여 생동감을 더할수록 현실의 오토마타는 훌륭한 위력을 내더군. 그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장치의 신이자 모든 연극의 지휘자 아니겠는가.
아샤
Asha
Noitcifatem
노이시파템
“이름의 의미 말인가? 흠…. 힌트를 주지. 한번 철자를 거꾸로 읽어보게.”
한쪽 시야, 새하얗게 빛나는 오른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는 그 성격을 반영하듯 호화로운 장식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그 검은 안대를 착용하고 다녔는데,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그 안대를 벗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일견 단순해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직접 손에 쥐어보면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묵직하고 단단했다. 그의 아샤, 노이시파템은 단순한 안대에 불과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 안에 담긴 기계 장치는 일종의 고글이자 보호구로, 검안경 같은 구조에 나시타의 신성이 담긴 렌즈가 맞물려 있었다. 기계 장치는 렌즈를 사용하여 나시타의 신성을 억제하거나 증폭할 수 있었다.
노이시파템은 평소에는 나시타의 한쪽 시야가 보여주는 연극이 현실을 무분별하게 침범하지 않도록 신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시타는 종종 제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현실에 연극을 겹쳐보고는 했던 탓이었다. 전투 시에는 반대로, 노이시파템의 렌즈는 형태를 바꾸어 나시타가 뚜렷하게 자신이 쓰는 연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신성을 증폭하는 동시에 두 개의 시야, 각각 현실과 연극을 보는 두 개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나누어 현실과 연극 사이의 혼동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연극이 연극으로만, 현실이 현실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두 가지가 뒤섞여 엉망이 되지 않는 것은 전부 노이시파템이 나시타의 아샤로써 수행하는 기능 덕분이었다.
성격
Personality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이가 되어야만 하네.
강박적인 / 책임감 있는 / 완벽주의자
나시타는 언제나 조금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면 단번에 어두워지는 낯이, 마치 그렇게 되는 것 자체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 것도 같았더랬다. 그는 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엄격하게 따랐고 그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유 없이 쉬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했으며 남에 비해 자신에게 혹독할 정도로 엄격했다. 비록 그 모든 조급함은 잠시 스쳐가 차가운 무표정 아래로 숨겨져 버렸지만,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챘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일 같더라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는…. 그 모든 모습은 분명 책임감으로 가득한 것이었으므로 그를 믿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제가 하겠다고 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는 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혹독하리만치 지나친 노력, 쉽게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고집, 혹은 자신은 그래야만 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것들이 나시타를 이루었다.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에 부응하기 위해 한없이 안달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런 그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신이었다. 그는 그러한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신으로서 제게 주어진 애정과 찬사, 믿음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켜야 할 이들을 지키는 것 뿐이지.
신중한 / 섬세한 / 단호한
그러한 완벽주의적 성격에는 아마도 그 신중한 성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나시타는 어떤 것도 쉽게 결단내리지 않았다. 모든 결정과 모든 선택이, 대부분의 언행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숙고를 거쳐서야 비로소 확인되어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실수를 두려워했고 실패는 더더욱 경계했다. 그러한 신중한 태도와 더불어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버릇은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짙게 묻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인적 사항은 물론 세세한 것들마저 기회가 닿는 대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특히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제게 우호적인 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언제나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아끼는 특유의 천성에서 기인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런 주의심 깊고 신중한 태도가 그를 멈춰세우거나 우유부단하게 했는가 하면 그 또한 아니었다. 그는 결연했고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단호했다. 지나간 일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으며 이미 내린 선택에 미련을 두지도 않았다. 평형을 지키면서도 가끔은 급진적이었으며, 침착하게 굴다가도 결단이 필요할 때는 대범해졌다. 망설임 없는 모습은 고집스러웠고, 그 행동 하나하나에는 이유 모를 의지가 가득했다. 어디까지나 그는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호승지심 / 자존심 강한 / 방어적인
그러한 모습들이 제르시아의 총리이자 셀라의 일원으로서 보이는 나시타의 대외적인 모습이라고 한다면, 개인으로서의 나시타는 그보다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했다. 쉽게 사람을 제 선 안으로 들이지 않았으며 일전부터 오래 알아온 사이가 아니고서야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전혀 관계없는 타인이라고 생각되면 예의를 갖추되 무심했고, 사교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소 딱딱한 태도를 고수하는 면이 있었다. 공사의 구분이 뚜렷했고 사적인 영역에 들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는 것이 올바른 설명이리라. 제 책임 아래 있는 이들을 아끼는 것과는 제법 대조되는 행동이었다. 특히 그는 저를 낮추어 보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했다. 고압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누군가에게 낮잡아 보이기는 싫어했는데, 그것이 본인의 천성인지 혹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여겼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그는 제법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고 지는 것 또한 지독하게 싫어했다. 특유의 냉정을 잃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유 없는 적의를 보이면 적어도 지거나 먼저 물러서는 일은 없었다.
기타
Etc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존경받는 총리, 과거의 영웅, 빛나는 인도자.
어떤 것도 환생한지 30년이 채 되지 않은 이에게는 무거웠다.
Residence: 제르시아 Xercia
나시타가 제르시아 의회의 총리직을 맡은지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 의회의 구성원 중에는 그의 신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도 있었으나 총리로써의 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본인이 받고 있는 압박이 강한 탓인지, 혹은 주변의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자신이 맡은 일들에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게 임했으며 그로 인하여 제르시아의 신과 인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주 제르시아 곳곳을 돌아보았으며, 스스로도 제르시아의 주민들에게 대단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책임감과 의무감은 분명 버거웠으나 적어도 나시타는 좋은 총리였다. 인간들에게 귀를 기울였으며, 신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 - “나를 믿는다면, 자네의 믿음에 보답하겠네.” -그대로, 제게 주어진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애쓰는 신의 모습이었다.
< 신앙에 대하여 >
에피니키온의 신도들, 즉 나시타를 따르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성실했으며, 정치적인 분야에도 많이 발을 들이고 있었다. 연혁의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 나시타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 나시타가 과거부터 재앙에 맞서 싸워온 영웅이자, 여러 생을 거쳐 제르시아의 총리직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는데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은 나시타의 능력을 믿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좋은 인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나시타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믿고 따를 법한 인도자의 능력이었으며, 늘 단호하고 강건한 모습이기를 바랐다. 나시타 또한 그 믿음에 따라 언제나 냉철하고 견고한 모습을 유지했다. 나시타의 신도들은 자신의 모든 할 일에 충실하고 어긋남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으며, 자신의 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는 했다. 그들은 나시타와 함께하는 이상 자신들 역시 재앙으로부터 안전할 것을, 나시타가 예전의 모든 생에서 그러하였듯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믿었다.
제르시아의 동쪽, 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위치한 나시타의 신전이 그 믿음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은빛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신전, 단호하고 결연한 그 생김새는 신전이라기보다는 요새를 닮아있었다. 실제로도 나시타의 신전은 단순히 기도를 올리는 곳에 국한되지 않았다. 승리와 성취, 명예를 높이 사는 나시타의 신도들은 신전 안에서 강연을 열거나 토론을 벌이기도 했으며, 가끔 거대한 홀을 극장 삼아 연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종 나시타가 연극의 각본을 쓰는 일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시타가 그것을 상당히 기껍게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전은 총리 관저와 함께 나시타가 대부분의 시간 상주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나시타의 신도라면 누구든지 나시타에게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신이 직접 신도를 만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에피니키온의 관습이었으며, 이번 생의 나시타 역시 그러한 관례를 승인했다.
신도는 아니었음에도 나시타와 가까웠던 이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메르셀Mercelle라는 신이었다. 나시타의 이전 생, 그 마지막을 함께했던 신이었던 그는 이번 생의 나시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자이자 나시타의 오랜 친구로, 이전 생애에 대한 기억과 지나간 연혁을 막 환생한 나시타에게 일러준 신이었다. 그는 제르시아 의회로부터도 꽤 신임을 받고 있는 신이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다소 급진적인 성향을 띄는 것과 그가 조용하게 주장하는 신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이 위험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제외하면 명망이 있었다. 나시타 또한 그를 셀이라고 부르며 곁에 두었다.
< 연혁 >
연도
기록
LL 0
쌓인 원죄가 하늘에 닿아 최초의 재앙이 도래하였으니, 세 명의 신이 수십 수백의 빛이 되어 물러날 적에 오로지 영광될 극을 열어갈 자 이곳에 고귀한 발걸음을 내리심이라. 그 신성한 이름을 승리의 노래, 에피니키온Epinikion이라 칭하시니 만물의 칭송 있으라.
LL 2993
몰려드는 재앙에 맞서 용맹한 싸움을 이어가심이라. 그분이 빛나는 순백의 눈으로 세상의 타락을 굽어보시매 그 안에 낙원의 영이 비춤을 누가 의심하리오. 그분의 손끝을 따라 신을 모시는 영광을 얻은 기계의 군단이 전장을 누빌 때에 스러지지 않는 적이 없더라.
LL 4951
처음으로 이 땅 제르시아에 몸을 내리시고 그들의 총리로 임하시니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받으심이라. 의회의 이들이 그분을 찬미하고 제르시아의 모든 신과 인간을 조화롭게 다스리시니 제르시아의 방벽이 견고하고 그분의 힘이 우리를 지키시는 한 만물이 자신의 온전함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처음으로 제르시아의 총리를 맡던 생애의 기록인가. 이 뒤로도 꽤 많은 생애에 총리로 임했었다는군. 과거의 나는 제법 좋은 총리였던 것 같아. 다행스럽게도 말이네. 내가 느끼는 제르시아에 대한 애정은, 이러한 과거의 조각들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르겠군.
LL 5771
하늘이 동요를 일으키고 재앙이 끝없이 우리들에게 몰아닥칠 적에 영웅된 모습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이라. 수없는 업화의 전장에서 최전방에 서시니 그 견고한 모습에 많은 이들 또한 무기를 들어 화답하였느니라. 에피니키온, 그 승리의 노래가 울려퍼지매 그분이 함께하시는 곳 패배의 오욕이 없으며 모든 전투의 극이 영광스러운 결말을 맞이하여 막을 내릴지어다.
가끔은 떠올릴 때가 있다네. 전장에서 재앙에 맞서 싸우던 시간들, 아주 단편적이지만 다시 셀라의 일원이 되기로 한 것은 어쩌면 이때의 기억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지. 영웅이라 불릴 정도는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재앙에 맞서고 제 신도를 지키는 것이 어찌 신의 임무가 아니라 하겠는가. 하여, 이번의 생애에도 부디 이전의 생애만큼의 공적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네.
LL 5993
총리로써 생을 마치신 이래, 제르시아의 호수 한가운데로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내시니 이번의 모습이 이전의 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이라. 그리하여 그분이 오래 곁에 두고 아끼시었던 신성 메르셀이 신성한 분을 다시 한번 대하시어, 그분의 지나간 삶을 기억하게 하니 그분이 이르시기를 다시 한번 자신의 의무를 행하겠다 하시매 모든 제르시아가 환희에 찼도다. 물과 같은 눈동자에 빛과 같은 시선을 담으시니 그분이 함께하시는 한 우리의 인생이 이루어지는 극은 오로지 광휘의 수호를 받음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번 생의 내 외형은 드물게도 전과 같았던 모양이야. 하여, 메르셀이라는 신이기록에 남은 나의 옛 기억을 일러주고 해야할 일을 가르쳐주었지. 나를 믿는 이들은 메르셀 또한 대체로 믿는 편이네. 나 또한 그가 제법 신뢰할 수 있을 법한 이라고 생각하고. 물론 메르셀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도 없잖아 있네만…지금으로써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니 넘어갈까.
LL 6018
지나간 생애에 그리 하신 것과도 같이 이번에도 역시 제르시아를 이끌기 위하여 총리직에 임하시니 이는 과거의 영광이 다시 오늘날에 이어짐이라. 모든 제르시아의 생명이 그분께서 이전날 그리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를 지키고 이끄실 것을 믿어 환희의 노래를 불렀나이다.
LL 6021
하늘이 핏물처럼 붉게 물드니 이 또한 재앙의 전조가 아니면 무엇이리오. 마땅한 의무를 등에 지고 셀라 아래 출전하시니, 경배하라. 우리의 신, 영광된 승리의 인도자 에피니키온이시여.
< 그 자신의 특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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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단정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겉으로 내보이는 감정 자체는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 언뜻 보면 무뚝뚝한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 것도 아닌지, 제 신도들이나 제르시아의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를 보이는 일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제르시아 출신의 신에게는 어쩐지 조금 유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가 제르시아에 대해 얼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의 증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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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고 간결하게 떨어지는 어조였다. 목소리 자체는 그리 서늘하지 않아 부드럽고 듣기 좋은 어린 미성에 속했음에도 그랬는데, 가면처럼 덧씌운 무정한 표정이 그러한 느낌을 주는지도 몰랐다. 정중한 예우를 갖춘 말투로, 상대를 부를 때는 초면에 주로 ‘그대’, 다소 안면이 있는 경우 ‘자네’가 되었으며 자신을 칭하는 호칭은 ‘나’, 혹은 ‘본인’이었다. 말투에서조차 공석과 사석을 엄격하게 분리했다. 살아온 시간에 비하여 어른스럽고 예스러운 어조를 사용하고는 했는데 가끔 그 말들은 거의 연극의 배우가 읊는 대사마냥 연극조로 들리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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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뜻없이 제 안대 위를 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저 습관에 불과한지, 별다른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잠이 적었고 자주 이곳저곳을 산책하듯 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띄고는 했는데, 케인이 규칙적으로 바닥을 딛는 것을 보아 다리의 불편함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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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서면 찰랑이는 물 같은 서늘한 향기가 났다. 총리 관저가 호수 한 가운데에, 신전이 커다란 강줄기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그 흘러넘치는 물들의 향기가 기어이 그곳에 자리잡은 신인 나시타 자신에게마저 옮겨붙은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