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페이지에 제가 얼룩을 만들어서요···. ”
덥수룩하고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가 눈 아래로 길게 자랐다. 그 밑으로는 시리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흐리멍덩한 백색의 눈동자가 자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마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체와 닮은 생기 없는 피부일 테다. 그마저도 전부 검댕이나 먼지로 얼룩져있는, 단정함과는 제법 거리가 먼 요소들. 그렇지만 이것들은 다시금 잘 다듬어진 매무새의 복장과 비견된다. 비선형적이고 자유로우며 그렇기에 인간적으로 보였으나, 오래도록 바라본다면 알 수 없는 괴리감에서 비롯된 불쾌함을 마주할 것이다.
182cm|64kg
케프리
Tebe
테베
신성
Divinity
파빌로
먼지나 재 찌끄러기 따위의 아주 작은 입자들을 자유롭게 다룬다. 입자 하나하나를 원하는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대략적인 신성의 역학적 원리이므로, 그것들은 그가 원한다면 신성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형상을 띌 수 있었다. 물론 형태와 움직임 뿐을 흉내 낸 더미 군집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 가루였던 것들 수천, 수만, 수억 개를 모아 앞을 가로막으라 손짓하자 쓸만한 방패가 되었으며, 날카롭게 벼려놓는 물건을 따르라 손짓하니 재앙을 벨만 한 무기가 되어 돌아왔다. 커다란 낫을 시작으로 두꺼운 장막까지 재구성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이 신성의 특이한 점은 신 본인의 육체를 일시적으로 먼지와 재로 치환하는 재화 작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육체 자체를 흐트러뜨리는 방식은 그가 구성해낸 장막조차 막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최후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샤
Asha
팔뚝에서 검지 끝까지를 감는 금속 파이프와 비슷한 악세서리 모양이다. 신성으로 다루는 입자들의 응집력과 결속력을 아샤를 매개로 하여금 강화시켜 그 강도를 보정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손을 통해서 신성을 사용한다는 무의식을 고려하여 제작되었으며, 동화가 이루어진 이후 신성의 사용량이 증가할 경우 아샤의 파이프 길이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인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성격
Personality
그는 순리와 섭리에 약하기에 두려움을 마주할 줄 아노니 포기하지 않는다.
신은 일어나서 걷고자 하는 이들을 도왔으므로.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을 도왔으므로.
마땅히 선의를 베풀 줄 알고 사소한 아픔을 감수할 줄 아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그렇지만 신의 기도를 들어주는 이는 신 그 이상의 자일까?
나는 자식이자 어버이이며 그렇기에 외따로 떨어진 존재 같았으니···.
1. 이상
가볍거나 무겁다. 기묘하고 이해할 수 없다. 무엇도 하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다가도, 사소한 것에 매몰되어 사흘 밤낮을 책 더미에 파묻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책장 하나를 넘기는 몸짓마저 느리고,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눌하기까지···. 그렇지만 그가 적어내려가는 글씨는 무엇보다 단정하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마저도 본디 반듯하게 빚어져 세상에 내놓아진 듯한 느낌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변덕스러움을 관철하는 성정마저 어느샌가 그 신의 본질이 되어버린 것인지, 테베의 주변인은 그를 설명하는 행위 자체를 꺼려 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널리 아우르게끔 만든 좋은 신이다, 라는 무의미한 문장마저도 그 낯이 늘 함께하는 은은한 미소로 인하여 볼품없이 퇴색된다. 이것은 그가 진정으로 크게 웃음 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때문이므로.
2. 이면
삶의 종장을 목전에 둔 주름진 손에서 풍겨오는 삶에 대한 미련과 슬픔, 혹은 정 반대의 꺼지지 않는 열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운명과도 같은 냄새. 사그라드는 삶의 뒤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동자는 테베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사무친다. 그는 인간에게 존칭을 허락하지 않았다. 먼지와 쓰레기, 타다 남은 잿더미의 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무릎 꿇는다. 고요한 병상 옆을 지키는 테베의 가려진 눈은 우수에 차있지도,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드리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은 완연하게 슬퍼할 줄 아는 듯 보이는 것이다. 존재하는지도 모를 지옥을 두려워하는 이의 죄를 사하는 손짓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는 부족함에도... 테베는 그들의 어깨에 시체보다 창백한 손을 얹어줄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는다. 평소의 비정형적인 언행을 일삼는 모습과는 다르게 쓰레기들의 무덤을 거느리는 신은 침묵이 드리운 이후부터 드넓은 창공의 부피만큼이나 공허해졌다.
3. 동경
테베는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그렇기에 완전히 인간스러운. 인(人)에 대해 꿈꾼다. 그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냐 묻는다면 어폐가 있을 테다. 조금 더 저차원적인 영역의 그들과 닮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 어버이와 자식, 스승과 제자, 교차하는 친우들과 같은 인간이기에 만들 수 있는 세계와의 연결고리. 태초의 삼신이 세계를 구해내어 그들을 이 하늘 위에 반영원 토록 살게 만들었으니 테베는 그 굴레 속에서 끝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다. 그렇기에 그는 영원히 만들 수 없는 세계와의 연결고리 같은 것들. 그 신은 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구태여 사유하고 상상해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누군가는 이를 따듯함이라고 칭했으며 다른 누군가는 이를 다정함이라고 칭했으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테베 자신마저도 답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테베는 늘 엉성한 몸가짐으로 비틀거리며 사과를 건넨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였다. 드세지 못하고, 강단 있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조차 밀어붙이지 못하는 유약함. 인간은 테베와 동등하지 않은 위치였으므로, 그는 늘 인간을 위하며,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좇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와 오래도록 함께하지 않은 자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테베는 실패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기타
Etc
1. 케프리
▶ 노인들의 신으로 알려졌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삶의 끝자락을 동행하는 자. 그와 그의 신도들은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웠으나, 동시에 누구보다도 죽음을 멀리했으니. 그들의 신앙은 죽음을 경외시하고 주어진 삶을 갈무리하는 행위의 마땅함에 대해 고뇌하는 실천적인 성향을 띤다. 플로리타 역사 속의 수많은 케프리는 늘 인간의 모든 형태의 마무리를 인정하고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서술하자면, 그들은 예측하거나 준비할 수 없는 죽음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전쟁과 재앙에 의한 죽음 같은 것들···.
▶ 케프리와 함께하는 신도들의 특이한 점으로는, 케프리'만'을 섬기는 신도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대부분이 노인인 신도들 중 절반은 그들이 젊었을 적 본래 가지고 있었던 신앙이 여전히 건재하며, 나머지 절반의 경우 별다른 신앙생활이 없었지만 그 나이가 노년기에 접어들고 난 이후 신전을 찾게 된 자들이다.
▶ 제 2 클랜 티리아 메인 함선에 신전이 위치한다. 명목상 신전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조그마한 책방과 다름이 없다. 이렇다 할 신관을 여럿 두지도 않았다. 매번 같은 클랜에서 탄생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번 신전이 위치한 곳에 정착했으니, 이것은 구역 재정립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공통점이다. 그의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연혁과 삶에 대한 기록물 또한 신전 내부에 도서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으나 열람 여부는 신의 자율 의지에 맡기고 있으며, 케프리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그 기록물들을 읽고자 한 적이 없었다.
▶ 그의 기원 이후 재앙의 징조가 출현했을 때마다 우연찮게도 케프리는 매번 공백기가 아니었다. 연합의 형태가 공고해진 이후부터는 매번 집결에 응했으며, 셀라 창설 이전일지라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이번 전조 또한 예외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 재앙마다 신들과 이렇다 할 두드러지는 교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필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2. 테베
▶ 52번째 환생을 거듭했다. 1 클랜 바브리치에서 직전의 삶과 26년의 공백을 두고 태어났으며 LL6021년을 기준으로 48년의 삶을 살았다. 그는 바브리치 마공학자의 이름을 따 이명을 짓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공학자는 생산 시설의 구석 먼지구덩이에서 테베가 뭉쳐 태어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티리아에 정착한 이후로는 별다른 활동 없이 작은 책방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독서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신전에 틀어박힌 나머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절반쯤은 맞는 듯 보인다.
▶ 책뿐만 아니라 모든 기록과 관련된 매체를 읽는 행위를 좋아한다. 본인은 알 수 없겠지만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매번 그랬다. 늘 삶을 마치기 전까지 자신의 책방에 있는 책을 전부 읽고자 했으며···. 당연히 성공한 적은 없다. 독서량이 많다고 의견을 나누는 토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다지 학술적인 논의를 하기에 적합한 상대는 아니다.
▶ 그를 제외하고 개인적인 부분에 관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추측하건데 신도들, 아니. 인간들과 시간을 보내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 같이 책을 읽거나, 마나 필드 아래 조성된 녹지를 산책하거나, 높은 건물들 사이 구석진 상가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기타 서술하기조차 민망한 사소한 것들까지. 언뜻 본다면 그들은 신과 신도가 아닌 평범한 친구처럼 보였다. 물론 케프리는 외관상 전혀 늙지 않았으니 약간의 위화감은 존재할 테다.
▶ 새로운 삶을 부여받고 난 이후 과거에게서 이어받고자 하는 것은 응당 짊어져야만 하는 최소한의 것들. 신도와 신전, 타고난 숙명과 의무를 행하는 법. 잔재로 남아있는 기억의 편린에 대해서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연, 혹은 그에 준하는 인과관계는 모두 잘라내고자 했으니. 그러한 사실을 모르던 동료 신이 그에게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게 화를 냈다. 그야 물론 이런 것들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 답지 않기 때문이다.
▶ 신성 때문인지, 평소 먼지 구덩이에서 생활하기 때문인지. 잔기침이 많았다. 어둑한 곳에서 조막만한 글씨를 읽으니 가끔은 눈도 침침한 듯 보였으나. 아직은 너끈했다. 그는 젊었으니까.